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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역사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창시되었다고 하지만 장소와 시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자료는 명확치 않다. 하지만 15C 중엽부터 널리 퍼져 성행되었다고는 여러 문헌을 통해서 확인 할수 있다.

당시에 얼마나 골프가 유행했던지 영토 방위의 제일 중요한 활쏘기 훈련을 게을리 하게 되어 급기야 1457년에 국왕 제임스 2세에 의해 골프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그 이후도 여러번 포고령을 내렸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5C말 화약의 발명으로 궁술 연마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60년 동안 영국 과의 대립끝에 1502년 영국의 헨리 5세와 글래스고우 협약의 체결로 보기드문 스코틀 랜드의 화평기의 시작으로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또 이러한 화평기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로 인해 골프는 가시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물론 그의 아들 제임스 6세와 딸인 메리여왕에게도 골프에 대한 영향은 대단하였다.
어린나이에 골프를 배운 제임스 6세는 자신의 전용코스를 만들고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그는 아이언은 잔디를 손상시킬수 있기때문에 목재 헤드로 된 클럽만 사용할 수 있다는 법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딸인 메리여왕은 1560년대에 주로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플레이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녀는 파리의 유학시절에는 그곳에서 플레이 할때 그녀의 동료학생들은 그녀의 클럽을 메고 플레이를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 학생들에 대한 프랑스어 명칭이 캐디였는데, 여기에서 캐디에 대한스코틀랜드식 명칭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GOLF HISTORY

또한 초창기 시절의 골프가 결코 스코틀랜드에서만 행해지고 있던것은 아닌 것 같다. 문헌에서는 영국 헨리 8세의 아내인 캐서린은 남편이 사냥을 나간동안 그녀 자신은 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513년 자신의 친구에게 쓴 편지에 이렇게 적고있다.
"골프에 심취하게 된것에 대헤 신께 감사드린다. 나는 골프가 매우 마음에 든다." 라고 골프에 대한 매력과 애정을 남겨 놓았다.

또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직계후계 자를 남기지 않고 죽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왕이 1603년 영국 제임스 1세로 즉위했고 그후 골프 플레이어의 열정뿐만 아닌 골프장비에 대한 발전도 가져왔다.
에딘버러에 사는 활제작자 윌리엄메인을 왕실의 종신 클럽제작자로 임명하고 보급 장교 제임스 멜빌에게 21년간 볼공급에 대한 왕실 전매권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임스 왕의 두 아들도 어릴때부터 골프를 접한건 당연한 일. 장남 헨리는 18세에 장티푸스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찰스1세는 1642년 올리버크롬웰과 그의 하원의원에게 참수형을 당하기전 아일랜드의 반란이 일어났을때도 골프를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19C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에 골프의 중흥은 계속 되어지며 점차 대중속으로 파고들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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